국제당뇨병연맹, 새로운 질환 분류 공식화…전 세계 수천만 환자 진단과 치료에 새 전환점 마련
기존 당뇨병 유형과 전혀 다른 양상…‘제5형당뇨병’ 명명 통해 연구 및 치료의 새 시대 열려
“당뇨병이라고 다 같은 당뇨병이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당뇨병은 대개 두 가지로 나뉘어 인식되고 있습니다. 면역 체계 이상으로 췌장에서 인슐린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제1형당뇨병, 그리고 주로 비만, 운동 부족, 잘못된 식습관 등 생활 습관에 의해 발생하는 제2형당뇨병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이 두 유형으로 설명되지 않는 당뇨병이 분명히 존재하며, 지금까지는 ‘영양실조형 당뇨병’이라는 모호한 명칭 속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2025년 태국 방콕에서 열린 국제당뇨병연맹(IDF) 세계회의에서는 중요한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전 세계 약 2천만~2천5백만 명에 달하는 이 질환 환자들이 앓고 있는 ‘영양실조형 당뇨병’을 ‘제5형당뇨병(Type 5 Diabetes)’으로 명확히 명명한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명칭 변경을 넘어, 향후 진단과 치료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중대한 선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제5형당뇨병’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의미…이제야 시작된 제대로 된 이야기
영양실조형 당뇨병은 오래전부터 보고된 질환입니다. 처음 발견된 것은 약 70여 년 전. 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저소득 국가에서, 그것도 영양 상태가 매우 나쁜 젊은 층에서 발병하는 매우 특이한 형태였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마른 체형이고, 소아나 청소년, 혹은 20대 초반의 청년층이 많았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제1형당뇨병처럼 보였지만, 치료 반응은 전혀 달랐습니다.
기존 제1형 당뇨병 환자와 동일하게 인슐린 주사를 투여했지만, 이들에게는 오히려 심각한 저혈당 증상이 나타나며 상태가 악화되기도 했습니다. 반면, 제2형 당뇨병처럼 인슐린 저항성을 기반으로 보기엔 환자들이 마르고 젊었기 때문에 전혀 맞지 않았습니다. 의료진들조차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진단 후 1년 이내에 사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세계보건기구(WHO)는 연구 근거 부족 등을 이유로 1999년 이후 영양실조형 당뇨병을 질병 목록에서 삭제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 질환은 수십 년간 의료 체계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 IDF의 공식 명명은 단순한 분류 이상의 상징적 의미를 갖습니다. 병을 병으로 인정해주는 것만으로도, 그 질환은 진단과 치료, 연구, 정책 수립의 출발점에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의 노력과 새로운 패러다임…제5형당뇨병의 본질에 다가서다
2022년, 그는 스와질랜드 의대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제5형당뇨병 환자의 인슐린 분비 능력이 극도로 저하되어 있음을 밝혔습니다. 이는 인슐린 저항성 기반의 제2형당뇨병이나, 인슐린 자체가 생성되지 않는 제1형당뇨병과는 질병의 기전이 완전히 다름을 의미합니다.
그는 “과거에는 인슐린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사적 결함이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새로운 치료법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치료의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하며, 그동안 효과가 없던 기존 치료법 대신 새로운 방식의 개입이 필요함을 시사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제는 이 질병을 ‘정식으로 부를 이름’이 생겼다는 점입니다. 명확한 이름은 곧 진단 코드가 되고, 치료 기준이 되며, 보험 적용과 정책 반영의 근거가 됩니다. 수천만 명의 환자들이 단순한 오진이나 방치가 아닌, 올바른 치료와 관리를 받을 수 있는 첫걸음인 셈입니다.
진정한 공중보건을 위한 첫 발걸음,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
호킨스 교수는 현재 IDF 제5형당뇨병 실무그룹의 공동 의장으로서, 향후 2년 간 이 질환의 공식 진단 기준 및 치료 지침을 정립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됩니다. 이 지침이 정착되면, 전 세계 의사들이 동일한 기준에 따라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게 되며, 글로벌 보건의료의 형평성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제5형당뇨병은 결핵보다도 더 흔하고, HIV/AIDS와 비슷한 정도로 전 세계에 퍼져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의료계 내에서도 거의 언급되지 않던 질병이었습니다. 이는 명칭이 없었고, 진단 체계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름을 가진다는 것은 질병에 ‘존재’를 부여하는 일입니다.
이제 제5형당뇨병은 국제 사회의 인정을 받았고, 그에 따라 각국은 실질적인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단순히 의학적 대응뿐만 아니라, 영양 불균형, 빈곤, 보건의료 접근성 같은 사회적 요인도 함께 해결되어야 합니다. 의료 기술만으로는 이 질병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가 마주한 복합적인 보건·사회 문제입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이름을 얻은 이 병이, 앞으로는 제대로 진단받고,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수천만 명의 삶이 달린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저소득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건강권을 보장해야 하는 전 세계 보건의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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